#1
예전 방명록의 글들을 주욱 읽어보았다. 뭐, 나는 과거를 먹으며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라든가, 참 한심하다 라는 반응에는 원천적으로 눈과 귀를 막을 생각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참 많고, 느끼고 싶은 시간들과 읽고 싶은 풍경들, 다시 한 번 만지고 싶은 어느 분위기들이 하나둘 떠오르는데,
감수성이 그닥 풍부하지 못해 오히려 냉혈한 쪽에 가까운 내가 눈물을 쏟고 싶을 정도였다.
#3
사람과 사람은 어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그것을 얇은 실이라든가, 아니면 에너지라고 칭해도 좋다-로 묶여있으므로 언젠가는 다시 맞닥뜨릴 것이라는 게 내 강한 생각이자 사상이다.
#7
프린터 토너의 충전을 완료하였으므로, 그동안 정성스레 탈고한 습작을 깨끗하게 출력하여 명망있고 권위있는 어떤 잡지사에 송부하기로 했다. 지난 달 어느 잡지사 시 부문의 당선을 과감히 포기한 것은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의 당선으로 문예지에도 보이지 않는 등급이 있으며, 나중을 위해서는 좋은 등급의 문예지에서 등단하는 것이 현명함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당선 포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혹은 미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대략 1500편의 시 중에서 내 작품이 선정된 것은 상당히 뿌듯하고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내 작품을 제외한 작품 모두는 그저 초등학교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은 절대로 아니므로, 시 장르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 다를 바 없는 초라한 내가 그런 영광의 주인공이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당선이라든가, 대상, 혹은 1등은 상당히 힘들고 영광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으레 몇 명은 1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다른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1등을 쟁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등 아니면 고개를 들지 말라거나 1등 예찬론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영광스런 사사를 표현하기 위해 잠시 언급한 것일 뿐.
#11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생들이 이렇게 토익에 열을 올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토익이라는 단어는 부지기수로 들어왔지만, 정작 내 자신이 토익을 응시해 본 것은 군 복무 중 비상소집이나 주말근무 그 모든 군과 관련된 연관고리를 간신히 일시적으로 끊고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효기간이 2년이 맞다면, 올해 2월로서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어쨌든 그렇다. 토익후기게시판과 토익점수큐엔에이게시판이 엄청난 열을 뿜으며 활성화되어있고, 토익은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신입사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 그리고 그것도 고고익선이어야만 하는 것. 토익이 한 문제에 5점이 아닌 상대평가이며, 그 정도는 듣기영역이 읽기영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것, 대박달과 쪽박달이 있어 어느 달에는 성적이 잘 나오고 또 그렇지 않으며, 토익점수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예상할 수도 있으며, 시험 당일날 시험을 응시하고 돌아오면 완벽한 시험문제 복원과 정답이 인터넷 게시판에 열람 활성화가 된다는 것 등 토익에 대한 갖가지 상식들을 알게 되었다. 토익은 적어도 취업준비생에게는 의식주와 같은 위상의 용어가 된 것 같다.
#15
요즘 시간이 없어서,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하고 있는데, 실은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지극히 게으른 습관으로 그렇다. 그리하여 내 손가락 끝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더욱 정확하게는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에서 그런 증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습진이 아니라 영양부족이 원인이라고 한다. 참, 한심한 일이다.
#19
보고싶은 사람이 참 많다. 헤어진 사람, 헤어지지 않은 사람, 연락이 두절된 사람, 연락이 두절되지 않은 사람 등의 나만의 기준과 생각대로 분류된 일련의 이름들이 마치 엑셀파일의 부분합 계산 이전 정렬하는 것처럼 아주 질서정연하게 내 머릿속에서 정렬되었다.
#56
중략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까. 요즘 창세기를 재미있게 정독하고 있다. 특히 인물들의 행적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주목해 읽고 있는데,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요셉은 열 일곱살에 억울하기 그지 없게 은 이십세겔-성경에 적혀 있는 그대로를 옮겼는데, 단위 세겔이 얼마의 가치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단돈인 것 같은 느낌이다.-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갔고, 나는 육신의 아버지를 열 일곱 살에 잃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부터 내 성격과 환경 그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라져버려, 마치 열 일곱 살부터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셉도 열 일곱살 어린 나이에 이방으로 팔려나갔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과의 생이별을 뜻하는 엄청난 고난이라고 보면 나는 요셉과 이렇게 동질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른살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고, 꿈 해몽에 대가도 받지 못하는 등의 억울하기 그지 없는 고난을 당한 것과 나 역시도 돈과 힘 없는 것으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부당대우를 받은 것, 그리고 암흑의 거래에 불가피한 피해자가 되며 피해를 감당하는 것, 좀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통증과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이해할 수 없는 사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동생들 네 명의 행동과 그로 인한 상처가 감히 비견된다면 비견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서른살에는 어떤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며, 아니 서른살까지 기다리기도 이제는 벅차다. 좀 제발 빨리. 아무리 늦어도 나의 귀하고 귀한 이십대가 가기 전에는 반드시, 요셉처럼은 아니더라도 이런 형편없어보이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길.
이렇게 기대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요셉만큼의 용모,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믿음이 없지만 말이다. 믿음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요셉보다는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열 일곱살 이후로 나의 용돈을 내가 벌어서 충당하고, 상당한 기회비용을 낭비해야만 했다. 참으로 아쉽다. 게다가, 그 기회비용을 아직도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이 밉다.
돌이켜 보건대, 내 생활은 열일곱 살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눌 수 있다. 이전은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너무나도 좋았으므로 더 언급할 여지도 없으며, 막연하고 아주 확실하게 좋은 기억들뿐이다. 그러나 이후는 엄청난 악몽과 고통의 시간들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경제학을 배운 이후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를 숱하게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안타까운 것들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야 했던 것과 대학교 때는 말할 수 없이 바빴던 것, 순전히 살기 위한 돈과의 전쟁 탓이었고, 대학 4년간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던 것과 빚 독촉에 엄청난 압박을 겪어본 것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기적같이 어느 누군가를 매우 사랑했고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해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고백을 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더욱 아니었다. 여하튼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과 여유롭지 못했던 환경을 동시에 한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꿈꾸면서, 하늘에 그려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던 기억이 전부다. 졸업 직후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군 입대를 했고, 군대는 완벽한 군대였으므로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연명 아니 연명했다. 고등고시나 소위 평생 물질적인 걱정이 없는 다른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환경을 구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으므로, 나는 엄청난 열정에도 최소한의 여건이 받쳐져 있어야만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닥치는대로 번 것은 모두 가족의 생활비 내지는 병원비, 그리고 기타 항목으로 모두 충당되었으며 나는 단지 밥을 먹지 않으면 더 많이 지급되는 급식비로 내가 사고 싶은 책 몇 권을 간신히 구매하고, 또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 가량 갈비탕으로 한 끼 식사를 거나하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군 시절 부대장과 함께 다니면서 이것저것, 비록 눈치를 보고 그리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평생 먹어볼까 말까 한 음식들을 여럿 먹어본 것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돌이켜보건대, 이러한 나의 모든 과거, 심지어는 초 단위로 인위적으로 나뉜 이런 순간적이고 매우 짧은 시간의 모든 과거 과거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오늘 요셉의 억울한 옥살이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아니 왜 그렇게 가혹하게? 요셉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생각이 거품을 물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결론은 어찌 되었든, 믿음이 아주 좋지 못한- 믿음이 아주 좋지 못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내가 상당히 안타까움을 또한 고백하며-탓에 아직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부족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의 끝 아니 결과는 반드시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가장 좋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믿음과 동시에 나는 삼 년간 눈치를 보며 죽어라고 고생했던 가지 못한 길-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패러디 버전이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여전히 아쉬운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ㅍ햔해 보고자 함-이 어느 순간 무너졌던 것 역시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고백을 내 스스로 하게 되었다. 흠, 눈물이 흘러 멈출 수 없을만큼 매우 아쉽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이다.
모르겠지만, 나는 최후 승리자가 되고 싶다. 패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진정한 승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이 생겼다. 그 자부심이란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안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 그리고 남보다 조금은 앞서나갔다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59
아침에 눈을 떴을 땐, 그 때 그랬었지 그것도 한낱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지 하고 웃음 지으며 커피 한 모금을 머금는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0
한 오백 만원 정도만 있으면, 무조건 미국 땅을 다시 밟아보고 싶다. 아, 혈혈단신이므로 오백 만원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내 꿈이 꺾이지 않은 이상,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영어연수프로그램을 등록한 것은 비록 지금은 약간의 출혈이 있을지라도 전체적인 생애주기를 놓고 보았을 때는 상당한 투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자율을 기회비용으로 놓은 미래가치는 무조건 현재의 나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69
생각해 보니, 연애가 내 인생에서 끊긴 지 어느 덧 일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중요하게 여길 법한 그 항목에 대해서 아직 별다른 의욕 내지는 소망이 없다. 의기소침이나 의욕상실과는 별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랄까. 그렇다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녀가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동안 생각이 아예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그녀의 변화된 소식을 들은 이후로부터 나 역시도 변화된 것 같다. 참으로 감사하다.
# 72
문득 전화번호를 외워버리는 특이한 내 습성때문에 오해를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한창 즐겁게 만나던 이성친구가 어느날 내 휴대전화를 보더니 왜 자기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냐고 난리부르스를 추었고, 그것이 화근 아닌 화근, 발단 아닌 발단이 되어 점점 멀어져 버려 결국은 이성친구의 파국으로 이어진 것.
본래 나는 지인의 모든 전화번호를 몇 번만에 외워버린다고 저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차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그것은 단축번호로 겨우 지인을 찾거나 혹은 단축번호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던 그녀에게는 변명 같지도 않은 거짓부렁같은 것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생각하며 알게 되었다. 사실, 내 휴대전화에는 어느 누구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데 말이다.
# 80
뜬금없는 소망 한 가지를 내뱉어본다.
내 자신이 나이라든가, 돈, 권력 등에 제발 굴복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최근에 일어난 갖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참 많지만, 이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만의 로그파일에 사료-사료가 될 것이라고 소망을 품어보며 명명함-로서 남길 생각이다.
예전 방명록의 글들을 주욱 읽어보았다. 뭐, 나는 과거를 먹으며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라든가, 참 한심하다 라는 반응에는 원천적으로 눈과 귀를 막을 생각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참 많고, 느끼고 싶은 시간들과 읽고 싶은 풍경들, 다시 한 번 만지고 싶은 어느 분위기들이 하나둘 떠오르는데,
감수성이 그닥 풍부하지 못해 오히려 냉혈한 쪽에 가까운 내가 눈물을 쏟고 싶을 정도였다.
#3
사람과 사람은 어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그것을 얇은 실이라든가, 아니면 에너지라고 칭해도 좋다-로 묶여있으므로 언젠가는 다시 맞닥뜨릴 것이라는 게 내 강한 생각이자 사상이다.
#7
프린터 토너의 충전을 완료하였으므로, 그동안 정성스레 탈고한 습작을 깨끗하게 출력하여 명망있고 권위있는 어떤 잡지사에 송부하기로 했다. 지난 달 어느 잡지사 시 부문의 당선을 과감히 포기한 것은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의 당선으로 문예지에도 보이지 않는 등급이 있으며, 나중을 위해서는 좋은 등급의 문예지에서 등단하는 것이 현명함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당선 포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혹은 미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대략 1500편의 시 중에서 내 작품이 선정된 것은 상당히 뿌듯하고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내 작품을 제외한 작품 모두는 그저 초등학교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은 절대로 아니므로, 시 장르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 다를 바 없는 초라한 내가 그런 영광의 주인공이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당선이라든가, 대상, 혹은 1등은 상당히 힘들고 영광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으레 몇 명은 1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다른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1등을 쟁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등 아니면 고개를 들지 말라거나 1등 예찬론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영광스런 사사를 표현하기 위해 잠시 언급한 것일 뿐.
#11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생들이 이렇게 토익에 열을 올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토익이라는 단어는 부지기수로 들어왔지만, 정작 내 자신이 토익을 응시해 본 것은 군 복무 중 비상소집이나 주말근무 그 모든 군과 관련된 연관고리를 간신히 일시적으로 끊고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효기간이 2년이 맞다면, 올해 2월로서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어쨌든 그렇다. 토익후기게시판과 토익점수큐엔에이게시판이 엄청난 열을 뿜으며 활성화되어있고, 토익은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신입사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 그리고 그것도 고고익선이어야만 하는 것. 토익이 한 문제에 5점이 아닌 상대평가이며, 그 정도는 듣기영역이 읽기영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것, 대박달과 쪽박달이 있어 어느 달에는 성적이 잘 나오고 또 그렇지 않으며, 토익점수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예상할 수도 있으며, 시험 당일날 시험을 응시하고 돌아오면 완벽한 시험문제 복원과 정답이 인터넷 게시판에 열람 활성화가 된다는 것 등 토익에 대한 갖가지 상식들을 알게 되었다. 토익은 적어도 취업준비생에게는 의식주와 같은 위상의 용어가 된 것 같다.
#15
요즘 시간이 없어서,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하고 있는데, 실은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지극히 게으른 습관으로 그렇다. 그리하여 내 손가락 끝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더욱 정확하게는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에서 그런 증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습진이 아니라 영양부족이 원인이라고 한다. 참, 한심한 일이다.
#19
보고싶은 사람이 참 많다. 헤어진 사람, 헤어지지 않은 사람, 연락이 두절된 사람, 연락이 두절되지 않은 사람 등의 나만의 기준과 생각대로 분류된 일련의 이름들이 마치 엑셀파일의 부분합 계산 이전 정렬하는 것처럼 아주 질서정연하게 내 머릿속에서 정렬되었다.
#56
중략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까. 요즘 창세기를 재미있게 정독하고 있다. 특히 인물들의 행적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주목해 읽고 있는데,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요셉은 열 일곱살에 억울하기 그지 없게 은 이십세겔-성경에 적혀 있는 그대로를 옮겼는데, 단위 세겔이 얼마의 가치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단돈인 것 같은 느낌이다.-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갔고, 나는 육신의 아버지를 열 일곱 살에 잃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부터 내 성격과 환경 그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라져버려, 마치 열 일곱 살부터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셉도 열 일곱살 어린 나이에 이방으로 팔려나갔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과의 생이별을 뜻하는 엄청난 고난이라고 보면 나는 요셉과 이렇게 동질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른살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고, 꿈 해몽에 대가도 받지 못하는 등의 억울하기 그지 없는 고난을 당한 것과 나 역시도 돈과 힘 없는 것으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부당대우를 받은 것, 그리고 암흑의 거래에 불가피한 피해자가 되며 피해를 감당하는 것, 좀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통증과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이해할 수 없는 사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동생들 네 명의 행동과 그로 인한 상처가 감히 비견된다면 비견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서른살에는 어떤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며, 아니 서른살까지 기다리기도 이제는 벅차다. 좀 제발 빨리. 아무리 늦어도 나의 귀하고 귀한 이십대가 가기 전에는 반드시, 요셉처럼은 아니더라도 이런 형편없어보이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길.
이렇게 기대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요셉만큼의 용모,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믿음이 없지만 말이다. 믿음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요셉보다는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열 일곱살 이후로 나의 용돈을 내가 벌어서 충당하고, 상당한 기회비용을 낭비해야만 했다. 참으로 아쉽다. 게다가, 그 기회비용을 아직도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이 밉다.
돌이켜 보건대, 내 생활은 열일곱 살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눌 수 있다. 이전은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너무나도 좋았으므로 더 언급할 여지도 없으며, 막연하고 아주 확실하게 좋은 기억들뿐이다. 그러나 이후는 엄청난 악몽과 고통의 시간들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경제학을 배운 이후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를 숱하게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안타까운 것들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야 했던 것과 대학교 때는 말할 수 없이 바빴던 것, 순전히 살기 위한 돈과의 전쟁 탓이었고, 대학 4년간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던 것과 빚 독촉에 엄청난 압박을 겪어본 것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기적같이 어느 누군가를 매우 사랑했고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해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고백을 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더욱 아니었다. 여하튼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과 여유롭지 못했던 환경을 동시에 한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꿈꾸면서, 하늘에 그려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던 기억이 전부다. 졸업 직후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군 입대를 했고, 군대는 완벽한 군대였으므로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연명 아니 연명했다. 고등고시나 소위 평생 물질적인 걱정이 없는 다른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환경을 구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으므로, 나는 엄청난 열정에도 최소한의 여건이 받쳐져 있어야만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닥치는대로 번 것은 모두 가족의 생활비 내지는 병원비, 그리고 기타 항목으로 모두 충당되었으며 나는 단지 밥을 먹지 않으면 더 많이 지급되는 급식비로 내가 사고 싶은 책 몇 권을 간신히 구매하고, 또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 가량 갈비탕으로 한 끼 식사를 거나하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군 시절 부대장과 함께 다니면서 이것저것, 비록 눈치를 보고 그리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평생 먹어볼까 말까 한 음식들을 여럿 먹어본 것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돌이켜보건대, 이러한 나의 모든 과거, 심지어는 초 단위로 인위적으로 나뉜 이런 순간적이고 매우 짧은 시간의 모든 과거 과거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오늘 요셉의 억울한 옥살이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아니 왜 그렇게 가혹하게? 요셉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생각이 거품을 물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결론은 어찌 되었든, 믿음이 아주 좋지 못한- 믿음이 아주 좋지 못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내가 상당히 안타까움을 또한 고백하며-탓에 아직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부족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의 끝 아니 결과는 반드시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가장 좋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믿음과 동시에 나는 삼 년간 눈치를 보며 죽어라고 고생했던 가지 못한 길-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패러디 버전이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여전히 아쉬운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음을 ㅍ햔해 보고자 함-이 어느 순간 무너졌던 것 역시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고백을 내 스스로 하게 되었다. 흠, 눈물이 흘러 멈출 수 없을만큼 매우 아쉽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이다.
모르겠지만, 나는 최후 승리자가 되고 싶다. 패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진정한 승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이 생겼다. 그 자부심이란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안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 그리고 남보다 조금은 앞서나갔다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59
아침에 눈을 떴을 땐, 그 때 그랬었지 그것도 한낱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지 하고 웃음 지으며 커피 한 모금을 머금는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0
한 오백 만원 정도만 있으면, 무조건 미국 땅을 다시 밟아보고 싶다. 아, 혈혈단신이므로 오백 만원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내 꿈이 꺾이지 않은 이상,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영어연수프로그램을 등록한 것은 비록 지금은 약간의 출혈이 있을지라도 전체적인 생애주기를 놓고 보았을 때는 상당한 투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자율을 기회비용으로 놓은 미래가치는 무조건 현재의 나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69
생각해 보니, 연애가 내 인생에서 끊긴 지 어느 덧 일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중요하게 여길 법한 그 항목에 대해서 아직 별다른 의욕 내지는 소망이 없다. 의기소침이나 의욕상실과는 별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랄까. 그렇다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녀가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동안 생각이 아예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그녀의 변화된 소식을 들은 이후로부터 나 역시도 변화된 것 같다. 참으로 감사하다.
# 72
문득 전화번호를 외워버리는 특이한 내 습성때문에 오해를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한창 즐겁게 만나던 이성친구가 어느날 내 휴대전화를 보더니 왜 자기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냐고 난리부르스를 추었고, 그것이 화근 아닌 화근, 발단 아닌 발단이 되어 점점 멀어져 버려 결국은 이성친구의 파국으로 이어진 것.
본래 나는 지인의 모든 전화번호를 몇 번만에 외워버린다고 저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차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그것은 단축번호로 겨우 지인을 찾거나 혹은 단축번호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던 그녀에게는 변명 같지도 않은 거짓부렁같은 것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생각하며 알게 되었다. 사실, 내 휴대전화에는 어느 누구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데 말이다.
# 80
뜬금없는 소망 한 가지를 내뱉어본다.
내 자신이 나이라든가, 돈, 권력 등에 제발 굴복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최근에 일어난 갖가지 사건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참 많지만, 이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만의 로그파일에 사료-사료가 될 것이라고 소망을 품어보며 명명함-로서 남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