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을 오랜만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도서관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다분히 의도적으로 도서관을 찾은 것도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여린 마음을 애써 달래며,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내려가기 전 며칠 동안, 친구들과의 저녁을 마치고 집에 그냥 들어가기 싫은 마음에 으레 들렀던 도서관에서, 막연히 그저 아름답고 평화로운 겉표지에 이끌려 펼쳐 본 시집은 나에게 그녀라는 이름과 그녀라는 언어를 선물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을 만난 지 정확히 3년 반 만에 나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생생하게 그렇지만 조금은 아련하게 기억하는 것은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픈 (흑백사진 속) 그녀의 눈망울 때문이었는데, 더욱이 그녀의 사진 옆에 잔잔하게 춤추는 듯한 그녀의 시 구절도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시 충분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까 맞닥뜨렸던 그녀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가히 이백 여 년 전의 내 마음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이 느껴졌다. 과연 내가 그 녀석들을 내뱉고 있는 것인지, 그 녀석들이 나를 내뱉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팍팍하고 메말랐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사랑뿐이라는 그 강한 존재의 외침이 참된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밤이다. 나는 그동안 사랑을 본의거나 혹은 본의 아니게 그저 마음 한 쪽에다가 쌓아두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쌓기만 하는 사랑은 머지않아 딱딱하게 굳어 버려 정작 그것을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아무런 소용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