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합리성이 개인의 이기주의에 근거하고 있었으므로, 어떤 선의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공유의 비극도 그랬고, 차갑게 느껴질 만큼 철저하게 페이오프란 숫자의 서열에 근거를 둔 내쉬균형도 그랬다.
그렇다면 경제학적으로 이러한 행태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충분히 생각해 봄직한 문제다.
오늘 최정규 교수의 글을 읽고, 나는 완벽한 희열에 사로잡혔다. 위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타적 인간, 행동경제학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류 방법론의 기본적 개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또 다른 심성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무시하고 있었던 그것이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생활을 왜,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그저 계량적으로만 관통시키려 했을까.  
실은 내가 군대에서 생각해 본 것이 공유지의 비극 역시도 코즈의 정리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거래비용이 어떻다든가, 거래자들은 가급적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어찌 보면 장황할 수도 있는 코즈의 가정은 사실 달리 아니 고정관념이라는 방에서 나오기만 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고정관념이란 다름 아닌 이기적인 인간, 다른 사람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발적 모금이라던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라는 사회적 일련의 선행는 절대로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물론 아니었던 것이다.

하루 온종일 팸플릿 조각 한 장을 만들면서,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밑줄 친 문장에 대한 첨언 : 이타적 인간, 행동경제학은 내가 너무 늦게 접했으며 이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언2 : 내가 학부 때 최정규 교수같은 분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 분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슬프지만, 나는 나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기회비용이 아닌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짬을 내어 생각해 보고 연구해 볼 수는 있다. 어쩌면 경제학의 본질적 가정은 조금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구해 볼 것이다.
Posted by j.s.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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