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와 따름생각

로그 2010. 11. 18. 01:12

20101117

찬찬히 로그를 읽어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 말하자면, 책상에 앉아 거의 의무감으로 책을 읽다가 잠깐 눈을 비비며 고개를 젖히면 바로 내 눈에 들어오는 황색 파일들의 뭉치 중 하나를 꺼내어 보는 일련의 소소한 행위가 내게는 참으로 엄청난 기쁨과 뿌듯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로그 파일(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모든 기록)에게 어떤 자신감이나 기대 따위의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신문 읽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가 신문의 기사가 읽는 이에게 가져다주는 새로움, 그리고 그것을 맞닥뜨리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그 즐거움 이전에 읽는 이가 품을 수 있는 어떤 기대감에 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소한 기록들의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인들에게 말하자면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소유하고 내가 느끼는 모든 좋은 것과 멋진 것, 그리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 그것은 단지 기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공유되고 전파되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인간)이라는 본질에 더욱 가깝게 될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면, 트리클 다운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상위 계층이거나 대기업의 입장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로그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글이 비교적 재미있다는 것과 함께 한편으로는 기록되어 있는 문장의 수준이나 내 어휘력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치고 싶은 표현을 발견한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심지어 잘못된 표기나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다. 심각한 문제다. 총체적 갈다듬이를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꾸준히 수행하여야 함을 느낀다. 또한 퇴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도 아울러. 비록 나의 로그가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 반성을 적는 것이기는 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나의 로그는 나만의 것이 아닌 나와 내 주변인-현재, 미래, 물론 과거의 그 모든 주변인들을 공히 포함한다-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더욱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요즘은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년 전 학부 1학년 때 보았던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다시 꺼낸 것이다. 가슴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친구를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난 느낌처럼 매우 반갑고 새로웠다. 새삼스럽게 내가 굉장히 간과할 가능성이 높은 기초 단계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보는 것은 기초 개념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될 것같다는 무언가 나 자신으로부터의 간절한 위기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물론 경제학의 개념을 확실하게 그렇지만 여유롭게 정립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책을 읽는 속도는 통독 이상으로 빠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느낌도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라스파이레스 지수와 파세 지수, GDP 디플레이터 같은 개념은 한 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 이쯤 되면 나도 어지간히 형편없는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기초 개념을 확실히 정립시키지도 않은 채 괜히 어줍잖게 고상한 공부를 한답시고 혼자 우쭐대곤 했으니 말이다.

모름지기 학문을 함에 있어서 기초를 튼튼히 쌓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조언은 적어도 나에게는 확고한 진리인 셈이다. 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렇겠지만, 특히 나에게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불특정하거나 혹은 특정한 집단 - 사실 특정하거나 특정하지 않다는 수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나의 무능력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의 평균보다도 더욱 뒤쳐지는 나의 이해력과 지적 능력, 그리고 인내심 같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처럼 평범하기 그지없이 사람이 학문을 함에 있어 기초를 튼튼히 쌓는 것보다 더욱 중요시할 것은 없으리라.

어쨌든, 로그는 분명히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 놓여진 작은 다리같은 것이다. 이 다리를 통해 나는 사회와 분명한 교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역하고나서부터 나름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연구 논문 - 지도 교수도 없거니와, 단지 학부 때의 선배들의 조언을 받는 것이 전부인데다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부실하면서도 과연 논문의 본질인 기여도가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 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말년 시절에 그래도 이전 후임 노릇을 하던 때보다는 조금 여유로웠던 덕에 생각해 보았던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짤막하게 써 놓은 에세이에 단지 살과 실증적 자료를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것을 쓰면서 얻을 수 있었던 수확 아닌 수확은 가우스 프로그램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과 HTML을 아주 원활하게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경제학의 대표적 방법론인 거시, 미시를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귀납적 사고가 중요한 만큼 방법론을 확실하게 숙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비록 그것이 눈에 띄는 어떤 성과는 아닐지라도 나 자신이 조금 더 학문이라는 범주에 가까워졌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실은, 학문이라는 외연 거기에 살짝 손끝이 닿은 정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제 3주도 채 남지 않은 이곳 생활이 끝나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유로워짐은 어쩌면 새로운 속박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거나, 내가 아니라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개선시키기 위한 과정이라면 나는 그 속박을 충분히 용인할 의향이 있다. 아직 나는 파레토 열위에서 파레토 우위로 향하고자 하는 작고 연약한 사람이므로.


Posted by j.s.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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