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is the night, So I love you
#1
지금은 조용하여, 더욱이 낮 시간 동안 일정한 간격으로 나를 괴롭혔던 울림이 이상하게도 더 이상 내 귀를 조롱하지 않는다. 영문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상당히 반갑고 기쁜 것임은 틀림없다. 지금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자 또 정확하고 예리한 관찰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투영시킬 수 있는 고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2
별안간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러야만 했던 이 작은 보금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위적 의무감은 실로 갑작스런 결정이나 충동적인 생각이 아니다. 마음속에 비교적 오랫동안, 철창을 등지고 산등성이에 걸쳐 있었던 하늘층계를 내려오며 품었던 작고도 강렬한 계획이었다.
#3
회자정리라는 진부하면서도 예리한 표현이 과연 나에게도 적용시킬 순간이 도래할까 하는 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넓고도 넓은 세상에서 무궁무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과 아울러, 나는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며 내가 아직 어리석고 연약하게 구는 것 따위의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니라는 독한 생각에서 비롯된 동의일 것이다. 나는 그동안 부모와 떨어져 본 경험이 극히 적으며, 그들과의 의사소통 시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동의는 내가 곧 밟아야 하는, 사실은 무작정 밟고 싶은 생각이 앞서 끊임없이 생각하여야만 하는 어느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 함은 그저 그것이 단순히 그리움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현실도피적인 마음이 완전히 없어질 때, 바로 그때가 비로소 날개를 펴고 날아갈 시간이라고 굳게 믿고 싶은 것이다.
#3
사회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나는 그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영위해야 하는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이 행여 사고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쉴 새 없이 초강력의 속박으로 나를 짓눌러온 의무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나태와 방종은 아닐 것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물론 애석하게도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사회와 사회의 모든 하위 사회가 규정한 의무감으로만 내 인생을 채웠다. 그러니까 의무적 정규교육과 선택적 정규교육(이것 역시도 선택이란 넓은 아량의 단어로 포장된 의무임에는 틀림이 없다)을 포함하여 의무적 의무(의무라는 단어를 중복해서, 똑같은 단어를 두 번이나 쓰면서 형용해도 그 의미가 의도만큼 표현될 수 없을 만큼 절대 회피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매우 강력하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의무)의 시간만을 고이 보낸 셈이다. 그러한 의무감이 아닌 순전히 나의 날개가 활짝 펴져 날아갈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1. 간헐적으로 내 자신이 날아가는 꿈 속에서 입을 헤벌쭉 벌리고선,
2. 두 평 남짓한 나의 공간 속에서 고리타분한 논문을 치어다보고 앉아 있으며,
3. 또 머릿뚜껑을 그야말로 억지로 열어 영어단어를 통째로 집어넣으며(통째로 집어 넣어서 각기 그 성분이 살아 숨쉬는 것은 부차적 문제로 하고),
4. 이해할 수 없는 유의관계에 놓인 두 단어를 찾는 별 시덥지도 않은 게임에 줄곧 참여만 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나는 시급하고도 또한 명확하고 분명하게, "나의 이러한 시간 소비 역시도 내가 그동안 불가피한 썩혀온 내 날개의 녹을 벗기는 소중한 자산이리라" 고 힘차게 내지르겠다.
아울러, 얇은 연필의 두께로 어느 정도의 넓이가 있는 백지를 꿋꿋이, 비교적 빈틈없이 칠하려 했던 인내심도.
2.그러나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그 빈틈이 더욱 많이 보인다. 그러므로 내가 부러워하여야 할 것은 인내심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만 칠하면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한 작자의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2. 출처 orbi7.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