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0
#1.
갑자기 영어를 사용하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딱히 영어를 적잖이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를 24시간이란 명목적 숫자로 쪼개본다면 기껏해야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채 두 어시간 정도에 그치는데, 그것도 소통적인 측면에서의 사용이 아니라 습득을 위한 사용이므로 갑자기 영어를 사용하기 싫어진 것은 별 쓰잘데기 없는 넋두리쯤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아침마다 지나가는 00000같은 제과점의 빵들이 어느 순간 혐오스럽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경험적이거나 이론적인 근거를 논할 필요도 없이 정말 어떤 연유도 없이 그렇다. 나는 나에게 조금은 슬프지만.서.도. 이렇게 말했다. "영어도 더럽게 못하는 놈이 ㄲ값을 하는구나."
#2.
또 이유 없이-위의 사례와는 달리 실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어쨌든-오른손 가운뎃손가락-공교롭게도 가운데의 손가락이다-에 이상이 있다고 느껴 병원을 찾았다. 일을 파하기가 무섭게 버스를 타고 하차하여 부리나케 뛰어간 덕에 병원 셔터를 닫으려는 간호사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3.
의사는 손가락을 보더니 "습진"이라고 했다. 나는 의아했지만 의사의 말을 절대 경안시할 입장이 못 되었고 더욱이 그 의사는 내가 신뢰하는 거의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소견을 매우 담담하면서도 또한 감사하게 듣는 시늉을 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며칠 동안은 손을 가급적 적게 씻고-아마도 수분 접촉을 덜 하라는 것이 본래 의도한 권고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현을 그대로 적는다- 추이를 지켜보자고 했다.
#4.
컴퓨터에서 00번가의 신발, 가방 쇼핑을 하고 있던 간호사-저 호랑말코같은 녀석만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쯤 집으로 가고 있었을텐데, 에이 그렇다면 자투리시간에 잠깐 쇼핑이나 할까 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일게 분명하다 라고 순전히 나 혼자 생각해 본 것이다- 가 건네주는 처방전을 받아들고는 바로 아래층- 병원은 상가 건물 2층이고, 약국은 1층이었다-으로 향했다. 간호사는 나를 쳐다보기는커녕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안녕히 가세요"를 꽤 힘찬 느낌으로 뱉어냈다. 마치 오랫동안 아이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고른 것처럼.
#5.
간호사 그녀가 컴퓨터로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매우 단순한 연유였다. 사실 모니터는 데스크 위에 손님을 등지고 놓여 있으므로 손님 입장인 나는 완전히 모니터의 내용을 볼 수 없는데, 그런 비대칭정보 상황에서의 일방적 열위자인 내가 어떻게 모니터를 볼 수 있었느냐 하면,
#6.
그 병원의 상호명패 덕분이었던 것이다. 간호사가 앉아 있는 바로 뒤에 대리석 재질로 보이는 상호명패가 크게 붙여 있었고, 모니터의 갖가지 빛이 그 명패를 통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 것이었다. 아마 간호사는 적어도 이러한 엄청난 비대칭정보 상태가 완벽하게 역전되는 이러한 빌미의 시추에이션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더 나아가서 명패를 빛이 잘 반사되는 대리석으로 사용한 것과 그 명패를 반드시 데스크에 앉아 있는 소위 병원 얼굴 역할의 간호사 바로 등 뒤에 배치한 것이 어쩌면 머리 좋은 의사의 치밀한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끔 화장실을 가는 척 하거나, 밖에 나오는 척 하면서 그녀가 열심히 진료 차트를 정리하고 있는지 아니면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든가, 00홈피를 들락날락하고 있는지 바로 그 명패를 통해 보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7.
어쨌든 또 아주 사소한 곳에서 사소한 어떤 경험적 사실을 통해 비대칭정보의 상태가 완전히 역전되는 조금 놀라운 것을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것도 별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토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같은 비렁뱅이에게는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된다. 따분한 교과서의 한 이론을 구체적 실례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므로.
#8.
각설하고, 나는 황급하게 아래층 약국으로 내려가서 처방전을 내밀었다. 그 약국엔 정확히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인데, 두 번 방문한 내가 파악하기로는 남녀 약사가 같이 동업을 하는 듯 보였다. 호칭을 존칭으로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부부는 아닌 것 같고 더욱이 여약사는 30대 중반, 남자는 아직 군대를 가지도 않은 헌내기 진입예정자-순전히 내 눈에 비춰지는 그들의 외모를 보고 내 두뇌 세포조직에 쌓여있는 정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처리해 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정도로 보였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들 중 남자 약사, 그러니까 매우 동안인 것처럼 보이는 깔끔한 이미지의 약사가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의 친절함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를테면 극도의 우울함에 휩싸여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녹아내릴 정도다.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는 않고, 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친절함이다. 그는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했으며, 약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설명을 곁들였고 또한 한 병에 오백원 정도하는 비타00을 한 병도 아닌 두 병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그가 친절하다는 것이 비타00을 두 병이나 넣어준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투와 태도, 그리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손꼽히지는 않을까 이렇게 확언을 금치 않는다. 더욱이 면박과 핀잔, 그리고 가식과 비아냥거림, 그리고 완벽하게 검은 가식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온 내게는 그런 친절함이 얼마나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모른다. 그런 친절함이라면 그야말로 과과익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치고 지나쳐도 좋은 것이 친절함이라고 생각한다.
#9.
실은 병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손가락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하고서는 펜을 잡을 수 없고, 또 신경이 쓰이는 탓에 공부를 할 수 없고, 또 이 때다 하며 밀물처럼 들어오는 수 만가지 개뼉다귀같은 잡생각들에, 더욱이 매우 우연하게 다크템플러에 내 자신을 빗대며 그렇게 나자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남 약사의 과도한 친절에 나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그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0.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르크스주의같은 비주류의 주류적 학문 같은 것으로 나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조금 해 보려고 한 지 정확히 오 분만에 나는 고개를 완전히 오른쪽으로 꺾어버리고는 잠을 청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있어 사회주의를 조금은 극단주의적으로 표방하는 정부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프롤레타리아도 아니고, 그냥 거리를 배회하는 순한 젊은이일 뿐이다. 외투를 걸침과 동시에 사첼 페이지같은 영웅이 되리라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 말이다.
#11.
오늘의 결론은 적잖이 담담한 것이다.
"행복은 완벽하게 주관적이지만, 불행은 그것보다 더욱 완벽하게 객관적이라는 것." 그러므로 나는 부단히 각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문득, 나의 습작들이 이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크템플러가 아칸으로 합체되는 순간의 느낌이랄까.
나의 로그는 서글프게도 서론 본론 결론이 모두 제각각이다.